투자는 심리게임이다(앙드레 코스톨라니 2편) 요약
실업률의 감소로 인플레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금리가 상승하고 또 그 결과 증권 시세가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며칠 뒤에 사람들은 실업률의 증가가 경기 침체의 징후라며 걱정을 한다. 자꾸만 커지는 무역수지 적자가 바람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가 하면, 너무 많은 수출은 물가상승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달러화의 강세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참 논리적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며칠 안 가서 사람들은 달러화의 강세를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전문가의 기분에 달려 있다.
어떤 이는 신용으로 많은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시장을 교란시켰다. 그가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주가를 투자자들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는 다시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주가 하락을 예견하여 공매도를 하도록 부추겼다. 가능한 한 많은 소액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공매도하도록 하여 최종일에는 더 이상 공매도 물량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 물론 그동안 공매도로 나온 모든 주식은 그가 사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주가를 마음대로 조정했다. 지금까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매도했던 주식을 그가 올린 가격에 다시 사야만 했다. 그런데 이러한 술책이 통하려면 현실적으로 무한정 많은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금융자본가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자본은 은행 대출이나 주식 중개인들에게서 나온 것들이었다. 즉, 오늘 없어질지 내일 없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들이었다. 최소한의 대출 제한만으로도 그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돈을 그야말로 '퍼담을'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천재에 가까운 100명의 인간들이 좁은 한 공간에 몰아넣어진다면, 이들은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지배된다. 한 증권시장 전문가가 이러저러한 이유와 충분한 심사숙고를 거쳐, 자신이 보유한 모든 주식을 팔기로 아침에 결정했다고 치자. 객장으로 나간 그는 매우 낙관적 분위기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몇 초 뒤, 그는 조금 전까지의 결정과 계획을 바꾸어, 자신의 주식을 파는 대신 새로운 주식을 더 사게 된다.
만약 시세가 상승하게 되면, 개미(소액투자자)들은 떠나는 기차에 빨리 뛰어오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주식을 매입한다. 그러면 변덕쟁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세가 대중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개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하여 동행하도록 만든다.
단기적 그리고 중기적으로는 심리학이 증권시장의 90%를 결정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근본적 이유들이 보다 큰 역할을 한다. 심리학 외에, 증권시장의 중기적 추세에 대한 결정적 요소는 금리이다. 소위 자본시장의 유동성인 금리는 증권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중 어느 쪽이 더 올라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금리는 일차적으로 채권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만약 금리가 떨어져 채권의 수익성이 낮아지면, 많은 유동성 자금들이 증권시장으로 몰린다.
그러나 증권시장에 대한 이러한 금리효과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다. 즉,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추세를 놓고 볼 때, 심리학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까지 근본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일반적 경기변동과 특히 산업부문 경기가 주식의 질과 미래 수익을 결정한다. 따라서 한 산업부문의 발전을 몇 년 앞당겨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은 큰돈을 벌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기본요소들이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짓는다.
1. 통화량과 신주발행
2. 심리적요소(낙관주의 또는 비관주의 등), 즉 미래에 대한 예측
시세 = 돈 + 심리
나는 시세가 올랐을 때 남아프리카의 광산에, 시세가 하락할 때는 프랑스의 국채에, 또 시사가 올랐을 때는 미국의 자동차기업에, 시세가 내렸을 때는 영국의 은행들에, 그리고 시세가 올랐을 때는 주석에, 시세가 내렸을 때는 귀리에, 마지막으로 시세가 올랐을 때는 원유에 그리고 시세가 하락했을 때는 카카오에 투자를 했다네. 자네는 이러한 투자가 서로 간에 그리 많은 연관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네. 하락해야 할 것이 상승하고, 상승해야 할 것들이 하락했지.
자네의 투자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그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모든 것은 오로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야. 그리고 그 무엇인가 비정상적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야. 사람들은 징후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네. 만약 진단을 통해 지나가는 악재를 인지한다 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하게 버틸 필요가 있네. 그러나 만약 전쟁 또는 평화,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금융적 결정, 정부의 정책 등 기본적인 요인들에 변화가 생기면 즉시 결론을 내려야 하며, 비상시라고 생각되면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스럽고 고가품이었던 것들을 즉시 바닥에 던져버려야 한다네.
주식들이 어떤 기본적인 요소의 변화로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수많은 투자자들은 어서 빨리 효과를 보기 위해 보유한 주식들을 곧바로 처분하려 하지. 그 결과 그 주식들은 아주 적게 오르거나 또는 전혀 오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네. 자신들이 기대했던 가격 상승이 나타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안달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또 팔아버리게 된다네.
매도와 매수는 단지 근본적인 이유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결국 주가가 이동하는 것은 오로지 수요와 공급 변화 때문이라고.
사람은 무엇 때문에 주식을 살까?
그는 바로 전에 집을 팔아서 수중에 현금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또 어쩌면 전에 이미 높은 가격으로 팔았던 주식을 이제 다시 싼 가격으로 매수하고자 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어떤 주가가 투자자들이 예상했던 최대치까지 상승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곧, 주가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어. 그 순간부터 소위 적절한 시세라는 것은 더 이상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거든. 그 주식을 사려는 사람은 적은 반면에 이득을 보기 위해서 기대했던 높은 가격에 팔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아. 이들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바로 전에 그 주식을 사들인 사람들이지. 그리하여 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라네. 그들이 기대했던 시세 상승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시세는 하락하게 되는 것이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없다. 언제 변환점이 올 것인가를 달력으로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맞을 확률이 더욱 낮다. 하나의 상승운동은 일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또는 단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징후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만약 증권시장의 시세 또는 추세를 '학문적' 방법을 가지고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거나 바보이다.
1987년의 대폭락 직후에 소신을 가지고 증권시장에 승차한 사람들은 높은 수익을 올렸다.
대부분의 프로들은 아침이면 자신들이 사고자 하는가 아니면 팔고자 하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저녁때 많이 먹을 것인가 아니면 적게 먹을 것인가를 어떻게 이른 아침에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결정은 오직 식욕이나 메뉴판에 어떤 음식이 나오는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진정한 프로는 단기간의 변동, 아랍의 독재자, 또는 실업률 따위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1925년 이래 보통 주식들의 주가가 수백 배로 뛰었으며 우량주들의 시세는 그보다 25배가 더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8년 동안 경제의 붕괴를 예언했던 모든 도사들이 지금까지 틀렸다.
1929년 식의 침체 때 디플레이션을 예고했던 사람들은 1987년 10월 폭락 후에는 인플레이션이 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활력 있게 진행되는 경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병을 동반하게 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은 다시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금리인상을 강요하고, 인상된 금리는 결국 증권시장의 시세를 아래로 잡아당기게 된다.
예언가들은 날마다 모든 사소한 일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곧 들이닥칠 인플레이션의 징후로 해석한다.
일방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뉴스를 따라가는 것은 증권시장에서는 완전히 미친 짓이다. 투자자는 폭넓게 생각하고 멀리 보아야 한다.
더디지만 과격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 최고의 투자일까?
금도 은도 아니다. 바로 주식이다.
정치적 사건들이 증권시장의 번영과 고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보았다. 반대로 증권시장의 발전도 경제, 정치 및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증권시장에 행복감이 넘쳐나는 시기에 이는 더욱 확실하게 감지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별장에서의 저녁식사 중에, 칵테일파티 중에, 또는 의회의 대기실 등 모든 곳에서 오로지 투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정보들을 교환하고 특정 주식에 대해 분석한다. 이때 '증권인'이라는 직업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주식투자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투자자들은 무조건 하차해야 한다.
투자자는 결코 백과사전이어서는 안 된다. 그는 다만 올바른 순간들의 관련을 알아야 하며 이에 맞춰 행동을 해야 한다. 절대로 많은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단지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장도 없고 종업원도 없는 이렇게 품위 있는 직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은행원과 중개인의 경우처럼 고객에게 친절하게 웃을 필요도 없고 복잡하게 거래할 필요도 없으며 신경질적인 고객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자기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마음대로 처리하는 이 귀족은 안락의자에 기분 좋게 앉아서 장사꾼들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한 채, 자신이 피우는 담배연기 속에 쌓여 생각을 한다. 그의 도구는 전화기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뿐이다.
사람은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나는 절대 실제 시세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에는 흥미를 갖지 않는다.
미친 사람에게 최대의 불행은 그가 게임시작과 동시에 돈을 땄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다음에 그는 미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유대인 한 사람이 마지막 1,000달러로 그의 사고력마저도 잃어버린다."는 격언이 있다.
이것은 게임가가 첫 게임에서 벌어들인 1,000달러 때문에 그의 사고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박식한 바보들도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학을 공부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 명함에 진한 문자로 된 경제학 석사라는 단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4년이라는 그들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경제학은 하나의 사이비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배운 지식은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약간은 새로운 지식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자네들이 대학에서 배웠던 모든 학문적 지식은 곧장 그리고 과감하게 잊어버리게. 이것들은 앞으로 자네들이 일하는 데 단지 짐이 될 뿐이라네."
나는 내 강연 참석자들에게 증권시장의 정보를 절대로 주지 않는다. 정보란 털어버릴 주식을 갖고 있거나 또는 수수료를 챙기기를 원하는 은행과 브로커들의 일이다. 그러나 내 강연 참석자들이 나를 통해 생각하고, 분석하고,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고수하게 되는 법을 배운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람은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자유로워야 한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무엇이고 나쁜 점은 무엇일까? 나이와 함께 일반적인 심리적 입장이 그리고 시간의 느낌도 변화한다. 젊은 시절에는 빨리 돈을 버는 것이 나에겐 급선무라고 생각됐다. 나는 모험적이고 위험이 존재하는 투자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정말 게임에 애착을 느꼈고 매우 단기적으로 사고했다. 오늘날 나는 일상의 일들을 냉정함과 일종의 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본다. 나는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제가 어떠했고 오늘이 어떤가는 알고 있다. 이제는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1년 단위로 계획한다. 그러나 그 1년 후에 여전히 내가 살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시간은 현재 나에게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돈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돈에 대해서라면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25세의 젊은이가 나에게 매우 심술궂게도 "저와 바꾸고 싶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다. 나는 "물론, 바꾸고 싶지."라고 대답했다. "나의 경험과 나의 체험을 가방 하나에 담아 갈 수 있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그는 나이가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는 80이 넘은 우리들은 파리 시로부터 특히 커다란 선물을 받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지하철에서 이등석 승차권을 가지고 일등석을 탈 수 있다. 인생은 85살부터 비로소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교훈은 책의 맨 마지막대화에 있음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억만장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보다는 자유로워야 한다(정신적, 물질적으로 내가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는 교훈과 나이가 듦에 따라 나의 경험과 체험이 하나씩 쌓이고 장기적으로 여유 있게 사고할 줄 아는 삶, 그것이 나와 내 주변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인생을 40이 넘어서야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아 현재 행복하다.